완당서론1

완당 김추사 서법 서론

"완당서론"은 역자 고은 지성룡선생의 출간물이므로 저작권 소유가있습니다. 따라서 무단 전재를 금합니다.

書派辨(서파변)1

書派辨(서파변)1

본문
 書法變遷 流派混淆 非溯其源 曷返于古, 盖由隸字變爲正書行草. 其轉移 皆在漢末魏晉之間而正書行草之分爲南北兩派者則 東晋宋齊梁陣爲南派 趙燕魏齊周隋北派也. 

시대에 따라 서법이 변천되어 그 유파(流派) 또한 혼란되었으니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서 어떻게 옛날의 올바른 서법으로 돌려놓을 수 있겠는가.
 대개는 예(隸)의 글자가 변하여 정서(正書)가 되고 행서, 그리고 초서가 되었는데 그 바뀌어짐의 과정은 한말(漢末) 위·진(魏晉)의 사이에 있다.

그리고 정서/행초가 남조 북조의 양파로 나누어진 것에 대해서는 동진(東晉)·송(宋)·제(齊)·양(梁)·진(陳)이 남파가 되고 조(趙)·연(燕)·위(魏)·제(齊)·주(周)·수(隋)는 북파가 되었기 때문이다.

서파변 2

서파변 2

본문
南派內江左風流 疏放姸妙 長于啓牘 減筆至不可識而篆隸遺法 東晋已多改變 毋論宋齊矣. 
北波則是中原古法 拘謹拙陋 長于碑牓而蔡邕韋誕邯單淳衛覬張芝杜度篆隸八分草書遺法 至隋末唐初 猶有存者. 兩派 判若江河 南北世族 不相通習耳.

남파는 바로 강좌(江左)의 풍류로서 소방(疏放)하고 연묘(姸妙)하여 계독(啓牘)에 장점을 가졌으나 필획을 감하여서 알아볼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으며 전예(篆隸)의 유법(遺法)도 동진(東晉) 시대에 이미 고치고 변한 것이 많았으니 송·제는 논할 것도 없겠다.

북파는 바로 중원의 옛 법으로서 구근(拘謹)하고 졸루(拙陋)하여 비(碑)와 방서(牓書)에 장점을 가졌으며 채옹(蔡邕)·위탄(韋誕)·한단순(邯鄲淳)·위개(衛覬)·장지(張芝)·두도(杜度)의 전·예(篆隸)·팔분(八分)·초서에 대한 유법(遺法)은 수의 말기나 당의 초엽에 이르러도 오히려 보존된 것이 있었다.

두 파는 갈라짐이 이렇게 분명함이 강하(江河)와 같아서 남북의 세족(世族)이 서로 겸통 하여 익히지 않았다.

주-韋誕-삼국 위나라의 서예가. 자는 중장(仲將). 한단순 장백영을 사사 했다. 초서와 해서에 능함. 

邯單淳-삼국 위나라 영천 사람. 자는 자숙(子叔). 조희를 사사하고 각체에 능했으나 특히 대전과 고예(古隸)에 능했음. 모든 황자(皇子)에게 글씨를 가르쳤고 삼체석경(三體石經)을 세웠다.

衛覬(위의)-삼국 위 하동사람. 자는 백유(伯儒),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조전(鳥篆) 팔분예서 초서를 잘 썼다. 한단순을 사사했다.

張芝-후한 돈황 주천사람. 자는 백영(伯英), 초서를 잘 썼고 최원(崔瑗). 두도(杜度)에게서 배우다. 붓을 직접 잘 매어 썼다.

杜度-후한 경조 두능(杜陵) 사람. 자는 백도(伯度), 장초(章草)의 창시자다. 최원, 최실(崔實)부자가 그의 서법을 이어 받았다.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다 떨어진 책과 무뚝뚝한 돌이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제주도 유배 후, 江上 (한강 용산변의 강마을)시절의 대표작이다

서파변(書派辯)3

서파변(書派辯)3

원문
南派內江左風流 疏放姸妙 長于啓牘 減筆至不可識而篆隸遺法 東晋已多改變 毋論宋齊矣. 
北波則是中原古法 拘謹拙陋 長于碑牓而蔡邕韋誕邯單淳衛覬張芝杜度篆隸八分草書遺法 至隋末唐初 猶有存者. 兩派 判若江河 南北世族 不相通習耳.

남파는 바로 강좌(江左)의 풍류로서 소방(疏放)하고 연묘(姸妙)하여 계독(啓牘)에 장점을 가졌으나 필획을 감하여서 알아볼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으며 전예(篆隸)의 유법(遺法)도 동진(東晉) 시대에 이미 고치고 변한 것이 많았으니 송·제는 논할 것도 없겠다.

북파는 바로 중원의 옛 법으로서 구근(拘謹)하고 졸루(拙陋)하여 비(碑)와 방서(牓書)에 장점을 가졌으며 채옹(蔡邕)·위탄(韋誕)·한단순(邯鄲淳)·위개(衛覬)·장지(張芝)·두도(杜度)의 전·예(篆隸)·팔분(八分)·초서에 대한 유법(遺法)은 수의 말기나 당의 초엽에 이르러도 오히려 보존된 것이 있었다.

두 파는 갈라짐이 이렇게 분명함이 강하(江河)와 같아서 남북의 세족(世族)이 서로 겸통 하여 익히지 않았다.

주-韋誕-삼국 위나라의 서예가. 자는 중장(仲將). 한단순 장백영을 사사 했다. 초서와 해서에 능함. 

邯單淳-삼국 위나라 영천 사람. 자는 자숙(子叔). 조희를 사사하고 각체에 능했으나 특히 대전과 고예(古隸)에 능했음. 모든 황자(皇子)에게 글씨를 가르쳤고 삼체석경(三體石經)을 세웠다.

衛覬 (위개)-삼국 위 하동사람. 자는 백유(伯儒),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조전(鳥篆) 팔분예서 초서를 잘 썼다. 한단순을 사사했다.

張芝-후한 돈황 주천사람. 자는 백영(伯英), 초서를 잘 썼고 최원(崔瑗). 두도(杜度)에게서 배우다. 붓을 직접 잘 매어 썼다.

杜度-후한 경조 두능(杜陵) 사람. 자는 백도(伯度), 장초(章草)의 창시자다. 최원, 최실(崔實)부자가 그의 서법을 이어 받았다.

書派辨(서파변)4


書派辨(서파변)4

 원문
南派內江左風流 疏放姸妙 長于啓牘 減筆至不可識而篆隸遺法 東晋已多改變 毋論宋齊矣. 
北波則是中原古法 拘謹拙陋 長于碑牓而蔡邕韋誕邯單淳衛覬張芝杜度篆隸八分草書遺法 至隋末唐初 猶有存者. 兩派 判若江河 南北世族 不相通習耳.

남파는 바로 강좌(江左)의 풍류로서 소방(疏放)하고 연묘(姸妙)하여 계독(啓牘)에 장점을 가졌으나 필획을 감하여서 알아볼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으며 전예(篆隸)의 유법(遺法)도 동진(東晉) 시대에 이미 고치고 변한 것이 많았으니 송·제는 논할 것도 없겠다.

북파는 바로 중원의 옛 법으로서 구근(拘謹)하고 졸루(拙陋)하여 비(碑)와 방서(牓書)에 장점을 가졌으며 채옹(蔡邕)·위탄(韋誕)·한단순(邯鄲淳)·위개(衛覬)·장지(張芝)·두도(杜度)의 전·예(篆隸)·팔분(八分)·초서에 대한 유법(遺法)은 수의 말기나 당의 초엽에 이르러도 오히려 보존된 것이 있었다.

두 파는 갈라짐이 이렇게 분명함이 강하(江河)와 같아서 남북의 세족(世族)이 서로 겸통 하여 익히지 않았다.

 주-韋誕(위탄)-삼국 위나라의 서예가. 자는 중장(仲將). 한단순 장백영을 사사 했다. 초서와 해서에 능함. 
邯單淳(한단순)-삼국 위나라 영천 사람. 자는 자숙(子叔). 조희를 사사하고 각체에 능했으나 특히 대전과 고예(古隸)에 능했음. 모든 황자(皇子)에게 글씨를 가르쳤고 삼체석경(三體石經)을 세웠다.
衛覬(위의)-삼국 위 하동사람. 자는 백유(伯儒),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조전(鳥篆) 팔분예서 초서를 잘 썼다. 한단순을 사사했다.
張芝(장지)-후한 돈황 주천사람. 자는 백영(伯英), 초서를 잘 썼고 최원(崔瑗). 두도(杜度)에게서 배우다. 붓을 직접 잘 매어 썼다.
杜度(두도)-후한 경조 두능(杜陵) 사람. 자는 백도(伯度), 장초(章草)의 창시자다. 최원, 최실(崔實)부자가 그의 서법을 이어 받았다.

  

 

論筆(논필)1

論筆(논필)1

원문
黃毛筆 東人所尙 微有麤滑 若中國所選黃穎 又與東出而通行者. 有異如此珍材未嘗東出而譯商行賣者又是一下劣東人皆不悟也.

貂尾 似是中國之紫穎 中國人 又以黃毛爲貂毫 今通行貂毫小筆 皆刻貂毫二字 亦與我東所稱不同 未敢一定於貂黃之間矣. 東人所稱靑鼠 亦於中國筆 未見紫穎有似靑鼠者. 紫穎是東人所稱貂尾 非靑鼠耳.

황모필(黃毛筆)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숭상하는 바이나 살짝 거칠고 미끄러운 흠이 있다. 중국에서 뽑아낸 황영(黃穎) 같은 것은 또 동쪽에서 나와서 통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와 같은 진재(珍材)는 일찍이 우리나라에서는 나지도 않으며 역상(譯商)들이 다니면서 파는 것은 또 하나의 하품·열품(劣品)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깨닫지 못한다. 초미는 이것이 중국의 자영(紫穎)과 같은데 중국 사람들은 또 황모(黃毛)를 초호(貂毫)라고 한다.

 지금 통행하는 초호 소필은 다 초호라는 두 글자를 새겼는데 역시 우리나라에서 일컫는 것과는 같지 않으니 감히 초·황의 사이에 이름을 정하지 못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컫는 청서(靑鼠)도 역시 중국 붓에서는 보지 못했으며 자영(紫穎)이 청서와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한데 자영은 본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컫는 초미요 청서는 아니다.

羊毫如孝子順孫 先意承順 如紫穎一種 又太剛腕弱者 殆不可使 嘗見羲獻遺風一種筆 如竹木之剛硬 柳誠懸不能用義 獻遺法之筆 以其太剛也. 今此種筆 果是右軍舊製之遺制歟. 羲獻遺風之上 更無加於此者. 然此筆爲第一上品, 又在羊毫上 得此妙然後 乃可言筆 至於東人所稱黃毛靑鼠 足以可與於大海之觀耶. 卽五鳳樓之於甕牖繩樞耳.

양호(羊毫)는 효자(孝子)나 순손(順孫)이 부조(父祖)의 뜻을 먼저 알아 받들어 순히 하는 것과 같으며 자영과 같은 일종(一種)은 너무 강하여 완력(腕力)이 약한 자는 거의 쓸 수가 없다.

일찍이 희헌유풍(羲獻流風)이라 새겨진 일종의 필을 보았는데 대나무 같이 강하고 딱딱했다. 유성현(柳誠懸)도 능히 희·헌의 유법(遺法)으로 된 붓을 쓰지 못한 것은 그것이 너무 강한 때문이었다. 지금 이 종의 붓은 과연 우군이 옛날 만들어 쓰던 그 유제(遺制)로 된 것인지는 모르나 희헌유풍의 위에는 다시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이 필이 제일 상품이 되어 양호의 위에 있으니 이 묘법을 터득한 연후라야 필을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컫는 황모나 청서에 이르러는 어찌 대해(大海)의 구경에 참여할 수 있으랴. 곧 오봉루(五鳳樓)에의 옹유(甕牖)와 승추(繩樞)일 뿐이다.


麤滑-거칠고 매끄러움.
黃穎-황모필.
譯商-외국으로 다니며 장사하는 사람.
貂尾-담비꼬리.
紫穎-황모필의 일종.
貂毫-담비 털 붓.
靑鼠-청설모를 이름. 
五鳳樓-오대 후량의 태조 주전충이 낙양에 도읍하고 세운 누각. 오봉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양을 조각하고 장식한 화려한 누각. 호화로운 전각의 대명사.
甕牖繩樞-깨진 항아리 마구리로 창을 만들고 노끈으로 문지도리를 만들었다는 말로 매우 가난한 집을 형용하는 말.

論筆(논필)

論筆(논필)
 趙文敏(孟頫) 善用筆 所使筆 有宛轉如意者 輒剖之. 取其精毫 別眝之. 凡筆三管之精 令工總縛一管. 眞草巨細 投之無不可 終歲無敞耳. 銳齊健圓 筆之四德.

조문민(趙文敏 조맹부(趙孟頫)) 이 용필(用筆)을 잘 하는데 쓰는 붓이 완전(宛轉)하여 뜻과 같이 나가는 것이 있을 때는 그 붓을 선뜻 짜개어 그 정호(精毫)만을 가려서 따로 모은다. 그리하여 붓 세 자루의 정호((精毫)만을 합쳐 필공에게 주어 한 자루로 매게 하면 진서(眞書)·초서(草書)의 거세(巨細)를 막론하고 던지면 아니되는 것이 없으며 여러 해가 가도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예리하고 가지런하고 건강하고 둥근 것은 필의 네 가지 덕이다.

 善書者 不擇筆, 非通論 歐陽銀靑 九成,化度, 非精毫不能 以麤毫用之 如精筆已耳. 

貂尾珍材可筆. 是山谷句也. 朴蕙百 頗工選穎 以靑鼠爲狼毫之上 自以爲得其妙 人或非之 不恤也. 及見貂尾 大以稱賞 品在狼毫靑鼠之上. 其言洵不誤也. 然此外又有加於貂狼者 不可以等數計, 恨無遍見湖潁諸品, 使之恢拓其眼也. 

 글씨를 잘 쓰는 이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 라는 것은 공통된 논이 아니다. 구양은청(歐陽銀靑-구양순)의 구성(九成) 화도(化度) 같은 것은 정호(精毫)가 아니면 불가능하며 추호(麤毫)를 가지고도 정필(精筆)처럼 쓸 따름이다. 

초미(貂尾)는 진재(珍材)로 붓을 만들어 쓸 수 있다.[貂尾珍材眞可筆]이라는 것은 바로 황산곡(黃山谷)의 글귀이다. 

 박혜백(朴蕙百)이 자못 제필(製筆)에 공(工)하여 청서(靑鼠)를 낭호(狼毫)의 상으로 삼으면서 스스로 그 묘리를 얻었다고 여기는 동시에 사람이 혹 그렇지 않다 해도 개의하지 않았다. 그는 급기야 초미를 보고서 크게 칭찬을 하며 품(品)이 낭호나 청서의 위라고 하는데 그 말이 진실로 빗나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밖에 또 초미나 낭호보다 더한 것이 있어 등수(等數)로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있겠지만 호영(湖穎)의 여러 품종을 두루 보이어 그로 하여금 그 안목을 넓히게 할 수 없는 것이 한이다

.古禪伯所云 屋外靑天 使復此觀 東人錮於圓嶠之筆 不知更有王虛舟陳香泉諸巨擘 妄稱筆 不覺啞然一笑耳 天下事 不可以堅定株守 乃如是云爾.

옛 선백(禪伯)이 이른바 "지붕 밖에 푸른 하늘이 있으니 다시 이를 보라."는 말도 있거니와 동쪽 사람들이 원교(圓嶠)의 필에 묶여 있어 다시 왕허주(王虛舟)·진향천(陳香泉) 여러 거벽(巨擘)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필을 일컫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한번 웃음이 터진다. 천하의 일이란 견정(堅定)하고 주수(株守)하곤 할 수 없는 것이 마침내 이와 같음을 말해 둘 뿐이다.


趙文敏-조맹부[趙孟頫-1254~1322]자는 자앙(子昻), 호는 송설도인(松雪道人), 원(元)나라의 화가 ·서예가. 서예에서 왕희지(王羲之)의 전형에 복귀할 것을 주장하고 그림에서는 당 ·북송의 화풍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그림은 산수 ·화훼 ·죽석 ·인마 등에 모두 뛰어났고, 서예는 특히 해서 ·행서 ·초서의 품격이 높았으며, 당시 복고주의의 지도적 입장에 있었다.
筆之四德-붓이 지닌 네가지 덕. 銳,齊,健,圓. 즉 예리하고 가지런하고 건강하고 둥근 것.
歐陽銀靑-구양순을 이르는 말. 
九成,化度,-구양순의 구성궁비. 화도사비. 
貂尾-담비 꼬리.
靑鼠-청설모.
狼毫-여우 털.
湖潁-황모필의 일종.
禪伯-선가(禪家)에서 추앙되는 인물.
巨擘-학식이나 일정한 전문부문에서 남달리 뛰어난 사람.
堅定-이미 굳건히 정하여진 이치나 사물.
株守-고지식하게 지킴.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고사가 있음.

蘭亭隨筆(난정수필)

蘭亭隨筆(난정수필)

원문
姜白石所藏定武蘭亭 爲趙子固落水本 蘇米齋手撫 無毫釐差訛 又爲姜開陽刻於山陰 蘭亭之於姜氏 大墨緣耳. 

강백석(姜白石 강기(姜虁))이 수장한 정무난정(定武蘭亭)은 바로 조자고(趙子固)의 낙수본(落水本)이다. 소미재(蘇米齋 옹방강의 齋號임)가 손수 모(摹)하여 호리(毫釐)의 차와(差訛)도 없다. 또 강개양(姜開陽)이 산음(山陰)에서 각을 했으니 난정이 강씨에게 있어 크나큰 묵연(墨緣)이라 하겠다.

 주
姜白石-강기(姜夔) 강기는 중국 남송 때의 시인이자 사인(詞人). 사(詞)에는 〈양주만(揚慢)〉등 시대를 영탄한 작품들과 자신의 괴로운 심사를 절실하게 담았다. 시에는 〈제야자석호귀초계(題夜自石湖歸苕溪)〉등의 칠언절구를 지어 자신의 방랑생활을 노래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그밖에 시 이론에도 밝았다. 자는 요장(堯章)이며 백석도인(白石道人)이라고도 불린다.

定武蘭亭-여러 난정 모사본 중 하나인 정무본을 가리킴. 
趙子固-조맹견, 1199(남송 경원 5)~1295(원 원정1). 호는 이재거사(彛齋居士). 남송 후기의 서화가. 자는 자고(子固), 송의 태조 11대의 자손. 조맹부의 종형. 해염(저장성)사람. 
보경 2(1226) 년에 진사가 되었다. 송의 멸망(1279)전에 사망하였다는 설이 있고 원 원정원년(1295)인 97세에 사망 또는 수주(푸젠성가흥현)의 광동진에 은거하고 원조를 섬기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그의 저서 『서론』은 후에 조맹부의 복고주의에 있어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화는 수묵과 백묘의 수선, 매, 난, 죽에 뛰어났다.
蘇米齋-청(淸)의 옹방강[翁方綱-1733 ~ 1818] 청나라 법 첩학의 4대가로 꼽히는 금석학(金石學), 비판(碑版), 법첩학(法帖學)에 통달한 학자 겸 서예가. 시론(詩論)에서는 의리와 문사(文詞)의 결합을 주장한 기리설(肌理說)을 내세웠다. 경학(經學), 사학,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탁월한 감식력으로 많은 제발(題跋)과 비첩(碑帖)을 고증하였고, 시론(詩論)에서는 의리와 문사(文詞)의 결합을 주장한 기리설(肌理說)을 내세웠다. 
주요 저서에 양한금석기(兩漢金石記)》한석경잔자고(漢石經殘字考)》 초산정명고(焦山鼎銘考)》소미재난정고(蘇米齋蘭亭考)》복초재문집(復初齋文集)》석주시화(石洲詩話)》등이 있다. 
姜開陽-각자가(刻字家)인 듯. 옹방강이 임모한 조자고(趙子固)의 낙수본(落水本)을 각자(刻字)했다고 전한다.
山陰-회계지방의 현명, 왕자유의 산음야설이란 고사가 있다. 즉 산음에 사는 왕자유가 한 밤중 대설이 내려 문득 흥이나 배를 타고 친구의 집 문 앞까지 다다랐으나 만나보지 않고 되 돌아 왔다. 
누가 그 이유를 묻자 ‘흥이 일어 갔으나 흥이 다하니 만나본들 무엇 하겠는가’하였다.
姜氏-姜白石, 강기[姜夔]를 말 한다. 1163 ~ 1203년의 인물. 중국 남송의 시인으로 자는 요장(堯章), 호는 백석도인(白石道人)이다. 
장시성 번양사람으로, 평생 관직으로 나가지 않고 강남 각지를 표박(漂泊)하며 범성대(范成大), 양만리(楊方里) 등 당시의 명사들과 교류했다. 시사(詩詞)에 능하였으며 악률(樂律)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법서와 고기(古器) 감식에도 뛰어났고 그 수장(收藏)도 풍요하였다. 서는 『난정서』를 배웠고 『속서보(續書譜)』, 『강첩평(綱帖平)』, 『계첩(난정첩)편방고(稧帖偏旁考)』 등 서학에 관한 저술이 있다.

論書法(논서법)1

論書法(논서법)1

원문
結句圓滿如篆法 飄颺灑落如章草 凶險可畏如八分 窈窕出入如飛白 耿介特立如鶴頭 鬱杖縱橫如古隸. 

爲點必收貴緊而重 爲劃必勒 貴澁而遲 側不得平其筆 勒不得臥其筆 須筆鋒先行. 努不宜直 直則失力 趯須存其筆鋒 得勢而出 引鋒下行 勢凸胸而立.

策須仰策而收 掠須筆鋒左出而利 啄須臥筆而疾罨 磔須戰筆發外得意 徐乃出之.

夫點要稜角 忌於員平 貴於通變. 

合策處策 年字是也. 合勒處勒 士字是也 凡橫劃並仰上覆收 士字是也. 三須上平 中仰 下覆, 春主字是也, 凡三劃悉用之. 一云上畫仰 中平 下覆.

側者側下其筆 墨精. 勒不得臥其筆 中高兩頭下 以筆心壓之. 上平 中仰 下偃, 空中以其力 如勒馬之韁 *韁-고 삐강.

결구(結搆)의 원만(圓滿)한 것은 전법(篆法)과 같고, 표양(飄颺)하고 쇄락(灑落)한 것은 장초(章艸)와 같고, 흉하고 험하여 두려워할 만한 것은 팔분(八分)과 같고, 요조(窈窕)하게 출입하는 것은 비백(飛白)과 같고, 경계(耿介)하여 우뚝이 선 것은 학의 머리와 같고, 울장(鬱杖)하고 종횡(縱橫)한 것은 고예(古隸)와 같으며, 점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붓을 거두는 데 있어 긴하고 중함을 귀히 여기며, 획을 만들 때는 반드시 늑(勒)으로 하는데 껄끄러우면서 더디고, 측(側)은 그 붓을 평평하게 해서는 안 되며, 늑은 그 붓을 뉘어서는 안 되며 모름지기 필봉이 먼저 가야 한다.

노(努)는 곧은 것만이 좋지 않으니 곧으면 힘을 상실하며, 적(趯)은 그 필봉을 보존하여 세(勢)를 얻어서 출봉(出鋒)해야 하며 봉을 끌고 내려가 세를 잡아 가슴을 내밀고 서며, 책(策)은 앙필(仰筆)로 나가 거두어야 하며, 약(掠)은 필봉이 왼편으로 나가되 예리해야 하며, 탁(啄)은 붓을 눕혀 빨리 나가 덮어야 하며, 책(磔)은 전필(戰筆)로서 출발하여 뜻을 얻어 서서히 출봉해야 한다

무릇 점은 준각(峻角)을 요하여 원평(圓平)을 꺼리고 통변(通變)을 귀히 여기며, 합책(合策)하는 곳의 책은 년(年)의 글자가 그것이며, 합늑(合勒)하는 곳의 늑은 사(士)의 글자가 그것이다. 
무릇 횡획(橫畫)이 모두 위는 앙획(仰劃) 아래는 부획(覆畫)으로 하는데 사(士)의 글자를 말한 것이며, 세 횡획이 어울리면 위는 평획(平畫) 중은 앙획(仰畫) 위는 부획(覆畫)으로 되는데 춘(春)·주(主)의 글자가 그것이다. 
무릇 세 횡획에는 다 사용한다. 일설은 상은 앙획 중은 평획 하는 부획이라고 함. 측(側)은 그 붓을 측 하여 내려가고 먹은 정(精)해야 하며, 늑은 그 붓을 뉘여서는 안 되며 중은 높고 두 머리는 낮은데 필심(筆心)으로써 누른다. 
상획은 앙으로 하고 중획은 평으로 하고 하획은 눞히어 공중에서 그 힘을 쓰되 말고삐를 끄는 듯 한다.

 주
章草-초기 시대의 초서체 
八分-예서체의 일종으로 흔히 팔분예서라 칭함. 
飛白-서체의 일종. 후한의 채옹(蔡邕)이 벽에 회칠하는 것을 보고 터득한 채로 붓의 터럭이 지나는 자국을 보이게 하는 필법. 
鶴頭-서체의 일종. 주로 조판(詔板)에 쓰였고 삐침을 누인 형태의 글씨체. 
緊而重-긴밀하고 둔중함. 
勒-영자팔법의 하나로 횡으로 긋는 평획. 
澁而遲-깔끄럽고 더딤.
側-영자팔법의 하나로 점획.
努-영자팔법의 하나로 수획으로 끌어 당겨 내리는 획.
趯-영자팔법의 하나로 꺾어 올리는 갈고리 획.
凸胸而立-붓을 끌고 내려가 세를 잡은 다음 가슴을 내밀고 터럭을 세운다는 뜻.
策-영자팔법의 하나로 위로 지치는 획.
仰-앙세(仰勢)
掠-영자팔법의 하나로 왼쪽으로 길게 삐치는 별(丿)획.
啄-영자팔법의 하나로 왼쪽으로 짧게 삐치는 획.
稜角-모서리 각(角)이 남.
上平中仰下覆-위는 평, 중은 앙, 하는 부세.

論書法(논서법)2

論書法(논서법)2

본문
短劃之祖 一策法也 其法仰筆력(走+歷,가는모양 력)鋒 輕擡而進 有如鞭策之勢. 兩頭高中下 柳云策仰收而暗揭 如其天夫之才類. 凡短劃皆爲策.

縱波乀五停首一 中三尾一 橫波乀五停首中二尾二. 

大體作仰劃, 不蹲以鋒傍裹. 蹲,三面方到 順指攲下 力滿尾駐仰出, 三過筆中 又有三過, 如水波之起伏. 戰,顫也. 取顫動徐行之意. 蹲,踞也. 頓駐之喩. 력(走+歷,가는모양 력)音歷,行也. 척(走+昔,비척비척 걸을 척)音昔, 側行也. 抑척(走+昔)行而遲澁也. 

書法有亻+竪(수)如竪字同義 亻+竪筆者 短努也. 夫旣有努法 又設此條 誠贅文也. 各本又皆誤作 亻+壹,亻+壹,無其字. 

단획(短畫)의 조(祖)로서 제일은 책의 법인데 앙필 역봉(䟐鋒)으로 가벼이 들고 나아가서 마치 편책(鞭策)의 세(勢)와 같이 한다. 두 머리는 높고 중은 낮다. 유종원(柳宗元)은 이르기를 "책은 앙필로 거두어 살짝 쳐든다." 했다. 기(其)·천(天)·부(夫)·재(才)와 같은 유로써 무릇 단획은 다 책이 된다.

종파(從波)의 乀은 오정(五停)인데 수(首) 일(一), 중(中) 삼(三), 미(尾) 일이요 횡파(橫波)의 乀은 오정(五停)인데 수 일, 중 이, 미 이이다. 대체로 앙획을 만들 때에는 준(蹲)을 아니하고 봉으로써 겉으로 싸며, 준(蹲)은 삼면(三面)에 힘이 충만히 가서 순지(順指)로 비스듬히 내려가 힘이 가득차면 살짝 머물러 쳐들면서 삼과(三過)하여 출봉한다. 

필획 중에는 또 삼과가 있어 수파(水波)가 기복(起伏)하는 것과 같다. 전(戰)은 전(顫)의 뜻인데 전동(顫動)하며 서서히 나간다는 뜻을 취한 것이며, 준(蹲)은 거(踞)의 뜻인데 돈주(頓駐)와 같으며, 역(䟐)은 음이 역(歷)인데 가는 것이요, 석(趞)은 음이 석(昔)인데 측행(側行)하는 것이며, 억(抑)은 석행(趞行)하여 더디고 껄끄럽게 나간다는 뜻이다. 서법에 또 수(亻+竪)가 있는데 수(竪)의 글자와 더불어 뜻이 같다. 수필(筆)이란 것은 짧은 노(努)를 말함이다. 이미 노의 법이 있는데 또 이 조목을 설치한 것은 진실로 췌문(贅文)이다. 각 본에는 또 오기(誤記)하여 亻+壹 로 되어 있는데 亻+壹는 그 글자가 없다.


輕擡而進-가볍게 들어 올려 나아 감. 
三過-세변 변하여 지나감.
蹲,踞-꿇어앉힌다는 뜻으로 진행 중 멈추어 붓의 허리를 일으켜 꺾어 세우는 동작. 절(節)과 전절(轉折)의 경우 필요하다. 
頓駐-蹲,踞와 같은 동작.
遲澁-붓의 감이 더디고 껄끄러운 것.
贅文(췌문)-쓸모없는 글.

 

 

논서법(論書法)3

논서법(論書法)3

원문
凡攻書之門 有十二種隱筆法 卽是遲筆 疾筆 逆筆 順筆 澁筆 戰筆 渦筆 提筆 啄筆 罨筆 走+歷筆. 凡用筆生死之法在於幽隱 遲筆法在於疾 疾筆法在於遲 逆入到出 取勢加. 診候調停 其於得妙 須在功深 草草求難得.

무릇 서를 공부하는 문(門)은 열 두어 종류의 은필(隱筆)의 법이 있으니 바로 지필(遲筆)·질필(疾筆)·역필(逆筆)·순필(順筆)·도필(倒筆)·삽필(澀筆)·전필(轉筆)·와필(渦筆)·제필(提筆)·탁필(啄筆)·엄필(罨筆)·역필(䟐筆)이다.

무릇 용필(用筆)에 있어 생사(生死)의 법은 유은(幽隱)에 있고 지필의 법은 질(疾)에 있고 질필의 법은 지(遲)에 있다. 역입(逆入) 도출(倒出)하여 세를 취해 가감(加減)하고 때를 살펴 조정(調停)한다. 그 묘리를 믿기 까지는 모름지기 공력(功力)이 깊어야 하며 쉽게 얻으려 들면 얻기 어려운 것이다.


隱筆法-지필(遲筆)·질필(疾筆)·역필(逆筆)·순필(順筆)·도필(倒筆)·삽필(澀筆)·전필(轉筆)·와필(渦筆)·제필(提筆)·탁필(啄筆)·엄필(罨筆)·역필(䟐筆).
竪筆-붓을 곧게 끌어 내리는 동작.
努法-끌어 내리는 세로 획. 
遲筆-붓의 속도가 더딤.
疾筆-붓의 속도가 빠름. 
逆筆-시작할 때 붓을 거슬러대는 것.
順筆-붓의 봉을 역장(逆藏)하지 않고 순히 대는 동작
澁筆-붓이 지나간 자죽이 매끄럽지 않고 껄끄럽게 동작 하는 것. 
轉筆-붓을 운필함에 있어서 방향을 바꿀 때의 동작.
渦筆-轉筆과 비슷. 
提筆-붓을 끌어 당기는 동작. 
啄筆-짧은 왼쪽 삐침의 동작.
罨筆-啄筆과 비슷.
䟐筆(력필)-빠르게 속행하는 필세. 
生死之法在於幽隱-필법의 생사는 필의 은(隱)과 유(幽)에 있음. 
遲筆法在於疾-지필, 즉 더딘 필법의 법은 원래 질 즉 빠름에 있음. 
疾筆法在於遲-질필의 법은 원래 지(遲) 즉 더딤에 있다는 말.
逆入到出-붓을 거슬러 댄 다음 나아가는 동작. 
草草-매우 바쁜 모양.

논서법(論書法)4

논서법(論書法)4

원문
一字 八面流通 爲內氣 一篇, 章法照應 爲外氣, 內氣 言筆劃疏密輕重肥瘦, 若平板散渙 何氣之有. 
外氣 言一篇有虛實疏密管束 接上遞下 錯綜映帶. 第一字不可移至第二字. 第二行不可移至一行. 

布白有三 字中之布白 逐字之布白 行間之布白. 初學皆須停均 旣知停均 斜正疏密 錯落其間. 

한 글자가 팔면으로 흘러 통하는 것이 내기이고 한 편의 장법이 서로 비춰 응하는 것이 외기이다. 
내기란 필획의 성글고 빽빽함과 가볍고 무거움 굵고 가는 것과 같은 것을 말 함이니 만약 밋밋하고 흩어져 있다면 어떻게 기가 있겠는가. 

외기란 한 문장에 비고 차 있는 것과 빽빽한 것을 주관하여 다스리는 것을 말 하니 위아래로 이어지면서 뒤섞이어 서로 비춰준다. 
그래서 제일 첫 글자가 둘째 글자로 옮아갈 수 없고, 둘째 줄이 첫째 줄로 옮아갈 수 없다. 

포백에는 셋이 있다. 글자가운데 있는 포백과 글자마다 그 사이에 있는 포백과 글 줄 사이에 있는 포백이다. 초학자에게는 반듯이 고르게 써야 한다. 이미 똑 고르게 한 줄 알고 나서야 삐뚤고 바른 것과 성글고 빽빽한 것이 그 사이에 섞여지게 된다.


內氣-한 글자가 팔면으로 흘러 통하는 것으로 필획의 성글고 빽빽함과 가볍고 무거움 굵고 가는 것(疏密輕重肥瘦)을 지칭.
章法-서체가 어우러지게 문장의 장구를 疏密輕重肥瘦로 맞추는 법.
疏密輕重肥瘦-장법에 있어서 성글고 조밀하며, 가볍고 무거우며, 살찌고 패랜 모양으로 전체장구가 어우러지게 하는 용어. 
平板散渙-문장이 밋밋하고 자자구구가 흩어짐.
外氣-한 편의 문장이 장법이 서로 비춰 응하는 것
虛實疏密-장법에서 실하며 소(疎)하고 밀(密) 함.
錯綜映帶-장법이 올바르게 되었을 때의 효과를 말함. 즉 위아래로 문장이 이어지면서 뒤섞이어 서로 비춰줌.
布白-글자가운데 있는 포백과, 글자마다 그 사이에 있는 포백과, 글 줄 사이에 있는 포백으로 획간, 자간, 장(章)의 구간의 여백. 이러한 간격의 여백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
斜正疏密-삐뚤고 바른 것과 성글고 빽빽함.
停均-고르게 하는 것.

 

논서법(論書法)5

논서법(論書法)5

원문
字資於墨 墨爲字之血肉 用力在筆尖 爲字之筋(힘줄근) 有筋者 顧眄生情 血脈流動 如遊絲一道 盤旋不斷 有點劃處在劃中 無點劃處亦隱 隱相實重疊 牽連其間 庶無平板散渙之病 書法論云 正書用行草意 行書用正書法是也. 

盖行草用意 有筆墨可尋行草 多牽絲 至眞書 多使轉. 
合一不二 神氣相實 盖眞書多用使轉 使轉者無形迹 牽絲者 有形迹之使轉 使轉者 無形迹之牽絲也 牽絲使轉合之 然後爲完法耳.

筆之輕者爲陽 重者爲陰 凡字中有兩直者 宜左細細右鹿 字中之柱 宜鹿餘俱宜細 此分陰陽之法耳. 正鋒偏鋒之說 古本無之 近來專欲功祝京兆 故借此爲談. 
正以立骨 偏以取態 自不容已. 書家 雖貴藏鋒 不得以糢糊爲藏鋒 須有用筆如太阿剸截意 盖以勁利取勢 以虛和取韻 如印印泥 如錐畵沙是耳.

글자는 먹을 바탕으로 하니 먹은 글자의 혈과 육이 되고 힘쓰는 것은 붓 끝에 있으니 붓끝은 글자의 힘줄이 된다. 
힘줄이 있는 것이라서 돌아보면 정이 생기고 피가 흘러 움직이니 아지랑이 한 가닥이 섯 돌며 끊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점획이 있는 곳에는 역시 숨는데 숨는 것이 서로 이어져 거듭 쌓여서 그 사이를 끊어 맺으니 거의 밋밋하고 흩어지는 병폐를 없게 한다. 
그래서 서법론에서 말하기를 ‘정서(해서)는 행서와 초서의 뜻을 사용하고 행서는 정서법을 사용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대개 행서와 초서에 뜻을 두면 붓과 먹은 행서와 초서의 길을 찾을 수 있어서 견사(牽絲-붓을 끄는 것)를 많이 쓰고, 진서를 쓰는데 이르러서는 사전(使轉-붓을 굴리고 부리는 운용법의 총칭)을 많이 쓰는데,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지 둘이 아니며, 신기(神氣)가 서로 상통하는 것이다. 

대개 진서(眞書)는 사전을 많이 쓰는데, 사전이라는 것은 모양과 흔적이 없는 것이니, 견사라는 것은 모양과 흔적이 있는 사전이요, 사전이라는 것은 모양과 흔적이 없는 견사이다.
 견사와 사전이 합쳐진 후라야 완전한 법칙이 될 뿐이다.
붓의 가벼운 것은 양(陽)이 되고 무거운 것은 음(陰)이 된다. 

무릇 글자 중에 두 개의 직획(直畫)이 있는 것은 왼편 획은 가늘고 바른편의 획은 굵어야 하며 글자 속의 주(柱)는 굵어야 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늘어야 한다. 이는 음양을 나눈 법이다.

정봉(正鋒) 편봉(偏鋒)의 설이 고본(古本)에는 없었는데 근래 사람들이 오로지 축경조(祝京兆)를 배우고자 하여 짐짓 이를 빌려 말한 것이다. 
정(正)으로써 골(骨)을 세우고 편(偏)으로써 태(態)를 취하는 것은 자연 말자고 해도 말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서가 비록 장봉(藏鋒)을 귀히 여기지만 모호(糢糊)한 것으로써 장봉이라 할 수는 없으며 모름지기 붓을 쓰기를 태아검(太阿劍)이 자르고 베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대개 경리(勁利)로써 세를 취하고 허화(虛和)로써 운(韻)을 취하여 인(印)으로 인주를 찍는 것 같이 하며 송곳으로 모래를 긋는 것 같이 해야만 되는 것이다.

주 
遊絲-유사연면(遊絲連綿). 획,자,장(章)을 연이어 쓰는 것.
盤旋-섯 도는 것.
牽絲-붓의 허리를 끔. 
使轉-붓을 운용하는 법으로 흔히 붓의 방향을 꺾어 돌리는데서 용법의 칭함이 적용된다.
陰陽之法-左細右鹿, 즉 왼편 획은 가늘고 바른편의 획은 굵게 하는 것.
左細右鹿-왼편 획은 가늘고 바른편의 획은 굵음. 
正鋒-운필의 올바른 방법, 또는 중봉.
偏鋒-정봉의 반대 운필 붓을 한 쪽으로 치우쳐 쓰는 악필(惡筆)법.
祝京兆-축윤명(祝允明). 중국 명대 중기의 서예가. 자는 희철(希哲),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손의 손가락이 하나 많았기 때문에 호를 지지(技指) 또는 지산(技山)이라고도 했다.
藏鋒-기필(起筆)시 붓의 봉을 감추어 시작 함. 
糢糊爲藏鋒-기필(起筆)시 붓의 봉을 감추어 시작하므로 획 머리가 예리하게 봉망(鋒芒)이 노출되게 하는 것을 피하는 방법.

 

논서법(論書法)6

논서법(論書法)6

원문
用筆之法 五指疏布四面 直筆食指中節之端 挽而向內 以大指螺紋處. 抑而向外 中指鉤其陽 名指小指距其陰 則指實掌虛 轉運便捷轉運之法 食指之骨 必橫逼 使筆勢向左, 大指之骨 必外鼓 使筆勢向右. 然後萬毫齊力 筆鋒乃中 若緊握不運 則力惟在筆 不至於毫. 
永叔所謂使指運而腕不至 東坡所謂虛而寬者也. 橫逼之機 在名指甲肉之際 外鼓之妙 在中指剛柔之間. 又曰以無名指爪肉之際 揭筆令向上.

側不曰點, 而曰側者 有側注而爲點之勢 至如 宀(면)之上點 亦不可謂之側 非若派捺撇拂之互稱.

용필(用筆)의 법은 다섯 손가락을 사면에 성글게 벌리며 붓대를 식지 가운데 마디의 끝에 세워 잡아당겨 안으로 향하고, 엄지손가락의 나문(螺紋) 있는 곳으로써 눌러 밖으로 향하며 가운데 손가락으로 그 양(陽)을 걸고 무평지와 새끼손가락으로 그 음(陰)을 받치면 손가락은 실하고 손바닥은 비어 운전하기가 편하고 빠르며, 운전하는 법에 있어서는 식지의 뼈는 반드시 가로 대어 필세(筆勢)로 하여금 왼편으로 향하게 하고 엄지손가락의 뼈는 반드시 밖으로 튀어나 필세로 하여금 바른편으로 향하게 해야만 만호(萬毫)가 힘을 가지런히 하고 필봉이 마침내 중으로 가게 된다. 

만약 단단히 잡기만 하고 돌리지 않으면 힘은 붓대에만 있고 호(毫)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구양영숙(歐陽永叔)의 이른바 "손가락으로 하여금 운용하여 완(腕)은 알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며, 동파(東坡)의 이른바 "비고 너그럽게 한다."는 것이다. 
가로 다붙이는 기(機)는 무명지의 손톱과 육(肉)의 사이에 있으며 밖으로 튀어나는 묘는 가운데손가락의 강하고 부드러운 그 사이에 있는 것이며, 또 "무명지의 손톱과 육의 사이로써 붓대를 떠받아 위로 향하게 한다."는 말도 있다.

측(側)을 점(點)이라 하지 않고 굳이 측이라 한 것은 측으로 비스듬히 쏟아 점을 만드는 형세가 있음으로 해서이다. 면(宀)의 윗점 같은 것에 이르러는 역시 측이라 불러서는 불가하니 파(波)를 날(捺)이라 하고 별(撇)을 불(拂)이라 하는 호칭(互稱)과는 같지 않다.


指實掌虛-붓 잡는 법의 하나로 손가락을 실하게 잡고 손바닥 안은 허하게 함. 
轉運便捷-붓을 움직이기가 편하고 빠름.
轉運之法-붓을 움직이는 법. 
萬毫齊力-붓의 모든 터럭이 모두 힘을 받음.
緊握-붓을 단단히 쥠.
永叔-구양영숙(歐陽永叔).(1007 ~ 1072) 구양수(歐陽脩)를 가리킴. 특히 문장에 뛰어나 당송팔가중의 한 사람.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 겸 문인. 한림원학사(翰林院學士) 등의 관직을 거쳐 태자소사(太子少師)가 되었다. 송나라 초기의 미문조(美文調) 시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의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었으며, 주요저서로는《구양문충공집》153권,《신당서(新唐書)》《오대사기(五代史記)》가 있다.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시호는 문충(文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문구(文具)를 살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를 써서 가르쳤다고 한다.
東坡-소식, 소동파. 중국 북송 때의 제1의 시인.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하여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켰다. 당시(唐詩)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詩境)을 개척하였다. 대표작인《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1037~ 1101년대의 인물로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본명은 소식(蘇軾). 별칭으로는 파공(坡公) ·파선(坡仙)이라고도 부른다.
虛而寬-허하고 실함.

논서법(論書法)7

논서법(論書法)7

원문
伸毫 是古今書家所未聞之說. 筆鋒 常在筆劃之內 一劃之中 變起伏於鋒抄 一點之中 殊衄挫於毫芒 此是鍾索以來眞訣 古今所不易 印印相傳者 近日東人所云 伸毫一法 卽向壁虛造 全沒着落者 至若撇之末筆 將何以處之 是說不去者也 後學皆爲此謨 轉入鬼窟耳. 

法可以人印傳 精神興會 則人人所自致 無精神者 書法雖可觀 不能耐久索翫 無興會者 字體雖佳 僅稱字匠 氣勢在胸中 流露於字裏行間 或雄壯或紆徐, 不可阻遏 若僅在點畫上論氣勢 尙隔一層.

"호를 편다[伸毫]"는 것은 바로 고금 서가의 들어보지 못하던 말이다. 필봉은 항상 필획의 안에 있어야 하며 한 획의 속에서도 기복이 봉초(鋒抄)에서 변하며 한 점의 속에서도 뉵좌(衄挫)가 호망(毫芒)으로 달라진다 하였는데 이는 본시 종요, 삭정 이래의 진결(眞訣)로서 고금을 통하여 바꾸지 못하는 것이며 인(印)과 인(印)이 서로 전하는 것과 같다. 

근일에 동인의 이른바 호를 펴는 한 법은 곧 바람벽을 향하여 허위 조작한 것으로 전혀 낙착(落着)이 없다.
 만약 별(撇)의 말필(末筆)을 만난다면 장차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후학들이 다 이의 그르침을 입어 점점 귀굴(鬼窟)로 들어간 것이다

법은 사람마다 전수받을 수 있지만 정신과 흥회(興會)는 사람마다 스스로 이룩하는 것이다. 
정신이 없는 것은 서법이 아무리 볼 만하다 해도 능히 오래두고 완색하지 못하며 흥회가 없는 것은 자체(字體)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기껏해야 자장(字匠)이란 말 밖에 못 듣는다.

 가슴속에 잠재한 기세(氣勢)가 글자 속과 줄 사이에 유로(流露)되어 혹은 웅장하고 혹은 우여(紆餘)하여 막아도 막아낼 수 없는 것인데 만약 겨우 점·획의 면에서 기세를 논한다면 오히려 한 층이 가로막힌 것이다.

 주
伸毫-호를 폄.
衄挫-붓을 돈좌(頓挫)하여 꺾어 꿇어앉히는 동작.
衄挫於毫芒-붓 터럭을 돈좌하여 꺾어 꿇어앉히는 동작. 
鍾索-삼국시대의 종요와 진(晉)시대의 삭정.
撇之末筆-삐침 획의 끝 부분.
字匠-글씨만 쓸 줄 아는 글자 쟁이.

 

논서법(論書法)8

논서법(論書法)8

書有懸腕撥鐙布白等法 俯仰向背上下照應諸妙 點畫淸楚 章法具備乃可.
 且鍾索以來 有不能易之一式 左右字是耳 右短下齊 左短上齊 間架結構 八十餘格 不從此入 妄拈一劃 盲施一波 汝近日俗匠顚倒猖狂 俱是惡札耳.
書家 謂作眞字 能?(广+禺)篆籒法則高古今.

서(書)는 현완(懸腕)·발등(撥鐙)·포백(布白) 등의 법과 부앙(俯仰)·향배(向背)·상하(上下)·조응(照應)에 여러 묘(妙)가 있으며 점과 획이 청초(淸楚)하고 장법(章法)이 구비해야 되는 것이다. 
우선 종·삭(鍾索) 이래로 능히 바꾸지 못하는 한 법식이 있으니 좌우의 글자 이것이다. 

우가 짧으면 아래를 가지런히 하고 좌가 짧으면 우를 가지런히 하며 간가(間架) 결구(結搆)의 팔십여 격(格)도 이로부터 들어가지 아니하고서 함부로 한 획을 긋고 맹목적으로 한 파(波)를 뽑기를 근일의 속장(俗匠)과 같이 전도(顚倒)하고 창광(猖狂)하니 이 모두 악찰(惡札)일 뿐이다.

서가(書家)가 이르기를 "진서(眞書)를 쓰면서 능히 전주(篆籒)의 법을 붙여 나가면 고금에 높다."라 했다.


懸腕-팔꿈치를 들고서 쓰는 행위.
撥鐙-붓 잡는 법의 한 가지.
俯仰向背-부세, 앙세, 향세, 배세. 
上下照應-위아래가 서로 비추어 호응 함.
點畫淸楚 章法具備-점과 획이 청초하여 장법에 구비 됨.
右短下齊-우측이 짧으면 오른 쪽은 가지런함.
左短上齊-좌가 짧으면 우를 가지런히 함.
間架結構-자간의 사이와 획 간의 짜임. 
篆籒-주전(籒篆), 상고의 전서. 소전 이전의 전서로 대전(大篆)이라고도 함.

논서법(論書法)9

논서법(論書法)9

원문
書法 如詩品畵隨 同一妙境 如西京古隸之斬釘截鐵 凶險可畏, 卽積健謂雄之義. 靑春鸚鵡揷花舞女 援鏡笑春之義 遊天戱海 卽前招三辰 後引鳳凰之意 無不與詩通 並不外於超以象外 得其環中一語 有能妙悟於二十四品 書境卽詩境耳. 至若羚羊卦角, 無迹可尋 自有神解在 神以明之. 又非蹤迹可覓耳.

서법은 시품(詩品)·화수(畫髓)와 더불어 묘경(妙境)은 동일하다. 이를테면 서경(西京)의 고예(古隸)가 못[釘]을 베고 철(鐵)을 자른 것 같으며 흉하고 험하여 두렵게 뵈는 것은 곧 건(健)을 쌓아 웅(雄)이 되는 의(義)이며, 청춘(靑春)의 앵무(鸚鵡)는 꽃을 꽂은 무녀(舞女)가 거울을 당겨 봄에 웃는 의(意)이며, 유천희해(遊天戲海)는 곧 앞으로 삼신(三辰)을 부르고 뒤로 봉황을 끄는 의(意)로 시와 더불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상(象)의 밖에 초월하여 그 환중(環中)을 얻는다는 한마디 말에 벗어나지 않는다. 

능히 이십사품(二十四品)의 묘오(妙悟)가 있다면 서경(書境)이 곧 시경(詩境)인 것이다. 이를테면 뿔을 떼어 놓은 영양(羚羊)과 같아 자취를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는 저절로 신해(神解)가 들어 있으니 신(神)으로써 밝혀 나가는 것은 또 종적으로는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西京-주(周)시대의 서울로 호경(鎬京)이라고도 부름.
斬釘截鐵-못[釘]을 베고 철(鐵)을 자름.
遊天戱海-하늘과 바다를 헤엄쳐 노님.
三辰-해와 달과 별을 아울러 이르는 말.
書境卽詩境-글씨의 정황이 시의 정황과 같다는 말. 

논서법(論書法)10

논서법(論書法)10

원문
筆有急術十數法 遲,疾,順,逆,倒,澁,轉,渦,罨,啄,提,력(走+歷),等法. 又不可以撥鐙例行之通法, 囿之矣. 此非年入小未就熟境者. 

所可獵而進者. 不有三十年老功 切不可妄行 漠隸一字 可抵楷行十字 近人所習皆東京末造書 至西京無以下手 且能作晉隸 亦幸耳. 

필은 은술(隱術)로 십수 가지 법이 있으니 지(遲)·질(疾)·순(順)·역(逆)·도(倒)·삽(澀)·전(轉)·와(渦)·엄(罨)·탁(啄)·제(提)·역(䟐) 등의 법을 들고 있으니 발등(撥鐙)의 예행(例行)하는 통법(通法)으로써 제한하는 것은 불가하다. 

이는 나이 젊어 완숙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자는 엽등(躐等)하여 나갈 수는 없는 것이며, 삼십 년의 노련한 공력이 있지 아니하면 절대로 망행(妄行)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한예(漢隸)의 한 글자가 해행(楷行)의 열 글자를 당할 만한데 요즘 사람들이 익히는 것은 다 동경(東京) 말에 만들어진 것이며 서경(西京)에 이르러서는 손을 댈 수가 없으니 능히 진예(晉隸)를 만들 수 있는 것만도 역시 다행이다.


遲疾-더디고 빠름.
順逆-순필과 역필. 터럭을 평봉으로 감추임이 없이 함과 감추어 거슬러 대는 표현.
倒澁-획의 기운이 매우 까칠하다는 표현.
轉渦-획이 방향을 모질게 바뀌어 운전함.
罨啄-짧은 좌별, 즉 삐침을 말 함.

논서법(論書法)11

논서법(論書法)11

원문
趙子固云 晉豈易學 學唐 尙不失規矩 學晉 不從唐人 多見其不知量也. 入道於楷 董有三焉 化度,九成,廟堂耳. 今以趙子固時言之. 
已六七百年 如今通行黃庭,樂毅,遺敎等法書 豈子固之所未見 而必拈次三碑者何歟. 

黃庭非山陰書 樂毅已於其時 無善本 不可爲準 遺敎 卽唐代經生書 不得不於此三碑求之 三碑雖石本 而原石尙存 下眞跡一等 非後世石刻之轉相摸翻者可比也. 

조자고는 말하기를 "진(晉)을 어찌 쉽게 배울 수 있으랴. 당(唐)을 배우면 오히려 규구(規矩)는 잃지 않는다. 진을 배운다면서 당 나라 사람을 따르지 않는 것은 너무도 요량 모르는 것을 내보일 뿐이다.
 해서(楷書)에 들어가는 것이 겨우 세 가지가 있으니 화도(化度)·구성(九成)·묘당(廟堂)이다."라 했다. 

지금 조자고의 시대를 들어 말하자면 이미 육칠백 년이 지났으니 지금 통행하는 황정·악의·유교 등의 법서 같은 것은 어찌 자고가 이를 보지 못했겠는가. 그렇지만 반드시 이 세 비만을 뽑아든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황정은 산음(山陰)의 글씨가 아니며 악의론은 이미 그때에 선본(善本)이 없어져서 표준으로 삼을 수 없으며 유교는 곧 당의 시대 경생(經生)의 글씨라 부득불 이 세 비에서 구할 수밖에 없으며 비록 석본(石本)이라 할지라도 원석이 상기 보존되어 있으니 진적(眞跡)에 비하여 한 등급이 낮지만 후세 석각(石刻)의 자꾸자꾸 서로 번모(飜摸)한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吾東書法 羅麗二時 專習歐體 今存舊碑 尙可溯得其一二 自本朝來 皆趨宋雪一路 然如申,成諸公所書門榜 雄奇古雅 大有舊法 以至石峯而雖有宋雪氣味 亦恪遵古式 嗣後自以爲極極力挽古者 輒皆動稱黃庭樂毅晉體 未知黃庭樂毅 竟是何本歟.

남아 있는 구비(舊碑)로써 오히려 그 한두 가지를 거슬러 얻을 수 있는데 본조부터 이래로는 다 송설(松雪)의 한 길로만 쏠리었다. 
그러나 신장(申檣)·성임(成任) 같은 여러 분들이 쓴 문방(門榜)의 액(額)은 웅기(雄奇)하고 고아하여 대단히도 옛법을 지녔으며 석봉에 이르러도 비록 송설의 기미는 있으나 역시 정성껏 옛법을 따랐던 것이다.

뒤에 와서 스스로 힘을 다하여 고법을 만회한다고 여기는 자들이 걸핏하면 다 황정·악의의 진체(晉體)를 말하고 있는데 모르괘라 황정·악의는 과연 이것이 무슨 본이었던가.

 주
趙子固-남송 후기의 서화가. 자는 자고(子固), 호는 이재거사(彛齋居士). 
化度,九成,廟堂-화도사비, 구성궁예천명비, 공자묘당비.
黃庭,樂毅,遺敎-황정경, 악의론, 유교경.
羅麗-신라와 고려.
歐體-구양순 체. 
宋雪-송,원의 조맹부의 호.
申,成諸公-신장(申檣)과 성임(成任).
雄奇古雅-웅장 기이하고 기괴스럽고 우아함.
門榜-문 지도리. 
石峯-한석봉. 한호(韓濩).
恪遵古式-엄격히 옛 법식을 따름. 
晉體-왕희지 대의 진나라체로 올바른 글씨체의 대명사임. 

 

 

 논서법(論書法)12

논서법(論書法)12

원문 
遂至圓嶠 又書抹古來遺規 臆造一法 執筆不講 懸臂 撥鐙 結字 不知左取上齊 右取下齊等法之 自古不敢易者 一世陸沈 殆無逈悟者 是書家之一大變耳. 學書者 知晉之末易學 而由唐人爲入晉經路 庶無誤矣. 

마침내 원교에 이르러는 또 예로부터 내려온 유규(遺規)를 다 말살하고 한 법을 억조(臆造)하여 붓 잡는 법에 있어서도 현비(懸臂)와 발등(撥鐙)을 익히지 아니하고 결자(結字)에 있어서는 "왼편은 위를 가지런히 하고 바른편은 아래를 가지런히 한다."는 등의 법으로 예로부터 감히 바꾸지 못한 것을 알지도 못하며 온 세상이 육침(陸沈)이 되어 거의 돌이켜 깨닫는 자가 없었으니 이는 서가의 하나의 큰 변이라 하겠다.

글씨를 배우는 자가 진을 쉽게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당 나라 사람을 경유하여 진에 들어가는 지름길을 삼는다면 거의 그릇됨이 없을 것이다.

古賢作字 未有不騰空直下 能造入神品者 非懸臂不能 懸臂則在空際旋轉 隨其到處 極肥至瘦 皆成妙趣 得天司寇 
學書 先懸臂劃圓圈三個月 待得圈子圓淨純熟 則用筆 自然遒勁 圓轉裕如 下筆作字 自無扁鋒 但圈子 摠不得參以指運.

鐘鼎古文 皆隸法所出來處 學隸者 不知此 便溯流忘源耳.

고현(古賢)이 글자를 만듦에 있어 공중에 올려 곧장 내림으로써 능히 신품(神品)에 들어가지 않는 자가 없는데 이는 현비(懸臂)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현비를 하면 공제(空際)에서 선전(旋轉)하여 가는 곳에 따라 살찌건 여위건 간에 다 묘취(妙趣)를 이룬다. 

그러므로 장득천(張得天) 사구(司寇)는 글씨를 배움에 있어 먼저 현비를 하고서 원권(圓圈)을 그려 삼개월이 지나 그 권자(圈子)가 둥글고 깨끗하며 순숙(純熟)할 때를 기다려서 붓을 쓰면 자연히 주경(遒勁)하고 원전(圓轉)하여 여유가 작작하며 붓을 눌러 글자를 만들면 스스로 편봉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다만 권자만으로는 다 되지 못하며 지운(指運)으로써 참(參)해야 한다. 

​종정(鍾鼎)의 고문자는 다 예법(隸法)이 이로부터 나오게 된 것이니 예를 배우는 자가 이를 알지 못하면 바로 흐름을 거스르고 근원은 잊어버린 격이다.


趙子固-남송 후기의 서화가. 자는 자고(子固), 호는 이재거사(彛齋居士). 
化度,九成,廟堂-화도사비, 구성궁예천명비, 공자묘당비.
黃庭,樂毅,遺敎-황정경, 악의론, 유교경.
遺規-남겨진 법규. 
懸臂-팔을 듬. 
撥鐙-붓 쥐는 법의 하나. 가장 일반적인 집필(執筆)법.
陸沈-속인들 가운데 숨어 현자임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사는 은자.
入晉經路-진체(晉體), 즉 올바른 글 쓰는 법으로 들어가는 경로.
騰空直下-붓을 공중에서 내리매 이미 입필의 방법이 정하여져 하필하는 필법.
極肥至瘦-매우 살지고 극히 가늠.
得天-장득천(張得天)
鐘鼎古文-종정에 쓰여진 고문으로 대전(大篆). 

 

 

論古人書(논고인서)1

論古人書(논고인서)1

원문
蘭谷書法 大有海崇尉筆意, 豈其淵源耶. 蒼鬱頓挫 其非俗本耳. 筆要鋒齊要强. 硯取潤澁相兼 浮津耀墨者. 

白陽山人草法 有孫虔禮揚少祀規度, 是草法正宗也. 草法不有孫揚, 皆作一鎭宅符 東人尤甚 無非惡札耳.

난곡(蘭谷)의 서법은 너무도 해숭위(海嵩尉)의 필의(筆意)를 지녔으니 어찌 그 연원이었던가? 창울(蒼鬱)하고 돈좌(頓挫)하여 속본(俗本)과는 매우 틀린다. 필은 봉(鋒)이 가지런하고 허리가 강한 것을 요하며 벼루는 윤택함과 껄끄러움이 서로 겸하여 거품이 뜨고 먹이 빛나는 것을 취한다.

백양산인(白陽山人)의 서법은 손건례(孫虔禮)·양소사(楊少師)의 규도(規度)가 있으니 바로 초법(草法)의 정종(正宗)이다. 초법이 손·양을 말미암지 않으면 다 진택부(鎭宅符 집 지키는 부적)를 만들 뿐인데 동인(東人)은 더욱 심하여 악찰(惡札)이 아닌 것이 없다

 주
趙子固-남송 후기의 서화가. 자는 자고(子固), 호는 이재거사(彛齋居士). 
化度,九成,廟堂-화도사비, 구성궁예천명비, 공자묘당비.
黃庭,樂毅,遺敎-황정견, 악의론, 유교경.
海崇尉-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딸 정혜옹주(貞惠翁主)의 남편인 윤신지[尹新之]를 지칭한다. 그가 해숭위(海嵩慰) 벼슬에 봉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 1582 ~ 1657년 간의 인물로 시호는 문목공(文穆公). 본관은 해평이며 1582년(선조 15) 인조 때 영의정 벼슬까지 오른 윤방(尹昉)의 아들로 태어났다. 1596년(선조 29) 선조의 딸 정혜옹주와 혼인하며 선조의 부마가 되어 해숭위에 봉해졌다. 정혜옹주의 어머니는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仁嬪金氏)이다. 시, 서, 화에 모두 능해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頓挫-붓 허리를 꺾어 앉힌다는 말. 중봉의 요체가 들어 있다. 
要鋒齊要强-봉은 가지런하고 탄력이 강함을 요한다는 말.
潤澁相兼-매끄럽고 껄끄러움이 서로 겸함.
白陽山人-진순[陳淳],중국 명대 후기의 문인화가. 자는 도복(道復), 호는 백양산인(白陽山人). 장주(강소성 소주) 대요촌 사람. 젊었을 때 문징명의 제자가 되어 문예 전반을 배웠다. 미법 산수를 잘했고 심주화풍을 기반으로 하는 화훼화의 조방한 수묵 기법은 후에 서위 팔대산인 등의 수묵 화훼화의 선구가 되었다. 저서에 『백양산인집』이 있다.
孫虔禮-초서의 성인손과정[孫過庭] 648?(당 정관 22) ~ 703?(당 장안 3?) 중국 당(唐)대의 서예가, 서론가. 자는 건예(虔禮), 또는 과정(過庭). 40세경 벼슬을 그만두고 참언을 받아 낙양 식업리에서 객사했다. 서예는 이왕을 배워 초서를 잘하였다.『서보』를 내고 자필본(타이페이 고궁박물원)이 있고 『초서천자문』,『경복전부』등이 알려져 있다. 진자공찬의 묘지(墓誌)가 전한다. 왕희지(王羲之)의 서법을 배워 초서를 잘 썼으며 그의 저서 《서보(書譜)》는 왕희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인적 서법을 근본으로 글씨를 공부하는 방법을 논한 것으로, 특히 저자의 자필본(自筆本)으로 유명하다.
揚少祀-양응식[楊凝式]을 이르는 말이다. 873(당 함통14)~954(후주 현덕 1)때의 인물. 중국 당말 오대(五代)의 서가. 자는 경도(景度). 화음(華陰, 산시성) 사람. 수나라 공신 양소(楊素)를 낳은 명문 양씨 출신.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그 문장은 당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당의 소종(昭宗, 재위 888~904) 때의 진사. 당 멸망 후, 오대의 각 왕조에 출사했으나 거짓으로 미친 척 하여 양풍자(楊風子)라 불리기도 했다. 오대의 후한에 출사하여 소부소사(少傅少師)에 임명되어 양소사라 불렸다. 처음 안진경(顔眞卿)의 서풍을 배워 광초(狂草)를 특기로 하고, 낙양에서 산 10년동안 모든 불사, 도관(道觀), 장벽(牆壁) 등 쓸 수 있는 모든 곳에 글씨를 썼다고 한다. 행서의『구화첩(舊花帖)』, 초서의『신선기거법』,노홍(盧鴻)『초당십지도(草堂十志圖)』(타이페이 고궁박물원)의 발(跋) 등이 있다.
孫揚-손견례와 양응식.
東人-여기서 동인은 조선 사람들을 말 한다.
鎭宅符-집안에 평안을 비는 부적, 여기서는 문기둥이나 벽에 붙이는 부적.















論古人書(논고인서)2

論古人書(논고인서)2

원문
蘇齋 元朝於胡麻上 書天下泰平四字 時蘇齋年七十八矣. 字如蠅頭 亦不罨鏡 甚可異也. 又自元朝 寫金經 日課一紙 每日乃畢 施之法源寺. 又於余所供大士小幀題字 甚細 皆同時事也.

六朝碑 如武平諸石 刁遵 陳思王碑 皆劇迹鄭道昭碑 直可與焦山銘甲乙 不知此, 何以溯棐几風流.

소재(蘇齋 옹방강의 호)는 원조(元朝)에 참깨 하나에다 천하태평(天下太平)의 네 글자를 썼는데 이때 소제의 나이 칠십팔 세였다. 글자가 승두(蠅頭)와 같은데도 역시 안경도 쓰지 않았으니 또한 이상한 일이다. 
또 원조로부터 금경(金經)을 쓰기 시작하여 종이 한 장을 일과로 삼아 그믐날에 끝마쳐 법원사(法源寺)에 시주했다. 
그리고 또 내가 공양하는 대사(大士)의 소정(小幀)에 제자(題字)한 글씨는 몹시 가는데 다 동시의 일이다.

육조(六朝)의 비로서 무평(武平)의 제석(諸石)과 조준(刁遵)·진사왕비(陳思王碑) 같은 것은 다 극적(劇迹)이며 정도소(鄭道昭)의 비는 곧장 초산명(焦山銘)과 더불어 갑을을 다툴 만하다. 
이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비궤(棐几 우군(右軍)을 이름)의 풍류(風流)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랴.


蘇齋-옹방강[翁方綱]. 1733(청 옹정 11) ~ 1818(가경 23). 중국 청대 중기의 학자, 서예가. 자는 정삼(正三), 호는 단계(覃溪), 순천부(북경) 대흥현 출신. 건륭 17년(1752)에 진사에서 내각학사에 올랐다. 경(經) ∙ 사(史) ∙ 문학에 넓은 지식과 박문과 정밀한 고증에 의한 업적이 많다. 특히 금석학, 비판(碑版), 법첩학에 관해 많이 알고 있으며 저서에『양한금석기』,『소재당비선』,『소미제난정고』,문집에 『복초제집외시(複初齋集外詩)』,『집외문(集外文)』이 있다. 그의 서예는 비학파로부터 평가는 받지 못했으나 구양순, 우세남에 기인하는 근직 실후한 소해(小楷)에 특색이 있고 유용, 왕문치, 양동서와 함께 첩학파의 4대가로 꼽힌다.
元朝-정월 초하루 아침.
胡麻-깨.
蠅頭-파리 대가리. 
金經-금강경. 
法源寺-중국 北京 청난[城南]구역에 위치한 사찰. 당(唐)나라 때인 645년에 착공하였고, 696년에 완성되어 '민충사[悯忠寺]'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청(淸)나라 때인 1734년에 오늘날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민중탕[悯忠堂]에는 역대 불경을 새긴 석각과 경당이 보존되어 있다. 1955년에 보수공사를 마쳤으며, 현재는 중국불교학원(中国佛教学院)과 중국불교도서문물관(中国佛教图书文物馆)으로 사용되고 있다.
六朝碑-특히 북위 시대의 비들로 통틀어 북위비라 부름.
武平諸石-무평 연간에 새겨진 북위체의 조상기들. 
刁遵-육조비 중의 하나. 
陳思王碑-조식[曹植], 진사왕(陳思王)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인. 자기를 콩에, 형을 콩대에 비유하여 육친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노래한 《칠보지시(七步之詩)》를 지었다.
鄭道昭碑-고졸준박한 한의 예서로 정도소가 쓴 비갈. 
焦山銘-예학명(瘞鶴銘).

論古人書(논고인서)3

論古人書(논고인서)3

원문
古人作書 最是遇然欲書者. 書候 如王子猷山陰雪棹 乘興而往 興盡而返 所以作止 隨意興會 無少罣礙 書趣 如天馬行空. 
今之要書者 不算山陰之雪與不雪. 又强邀王子猷 直向戴安道家 中去 寧不大悶 今使西極龍媒 受圉奴羈勺 上峻阪 何以展繭 雲之步也 放筆一笑.

智永禪師 鐵門限 竺守其助右軍家法 橫劃必瘦 直畫必肥 此筆勢之自然 不得已已處.

옛사람이 글씨를 쓴 것은 바로 우연히 쓰고 싶어서 쓴 것이다. 글씨 쓸 만한 때는 이를테면 왕자유(王子猷)의 산음설도(山陰雪棹)가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면 돌아오는 그 기분인 것이다. 
때문에 행지(行止)가 뜻에 따라 조금도 걸릴 것이 없으며 서취(書趣)도 역시 천마(天馬)가 공중에 행하는 것 같다

지금 글씨를 청하는 자들은 산음에 눈이 오고 안 오고를 헤아리지 않고 또 왕자유를 강요하여 곧장 대안도(戴安道)의 집으로 향해 가는 식이니 어찌 크게 답답하지 않겠는가. 
지금 서극(西極)의 용매(龍媒)로 하여금 어노(圉奴)의 기적(羈靮)을 받아 준판(峻阪)에 올라가게 한다면 어떻게 섭운(籋雲)의 걸음을 펼 수 있겠는가. 필을 놓고 한번 웃는다.

지영선사(智永禪師)는 철문한(鐵門限)을 만들고서 그 선조 우군의 가법을 독실이 익혀 횡획은 반드시 여위고 직획은 반드시 살찌니 이는 필세(筆勢)의 자연스러움은 하지 않으려 해도 그리 못하는 곳이다.


遇然欲書-글씨는 우연히 쓰고 싶을 때 써야 한다는 말.
王子猷-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한정록』권8의 '임탄(任誕)'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왕자유(王子猷)는 산음(山陰)에 살았다.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잠이 깨자 방문을 열어놓고 술을 따르라 명하였다. 사방을 둘러보니 세상이 온통 흰빛이었다. 일어나 서성이며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외우는데 갑자기 대안도(戴安道) 생각이 났다. 이때 대안도는 섬계(剡溪)에 있었다. 왕자유는 한밤 중에 작은 배를 몰아 밤을 새워 가서 대안도 집 앞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돌아와버렸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흥이 일어 갔지만 이내 흥이 사라져 돌아온 것이다. 어찌 꼭 대안도를 만나 봐야 하는가?"라고 말 했다 한다.
山陰雪棹-왕자유가 눈 오는 정경의 분위기에 흥에 젖어 눈 오는 밤에 노를 저어 친우를 찾다는 말.
山陰雪棹乘興而往興盡而返所以作止 -글씨를 쓴 것은 바로 우연히 쓰고 싶어서 쓴다는 말로 글씨 쓸 만한 때는 이를테면 왕자유(王子猷)의 산음설도(山陰雪棹)가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면 돌아오는 기분으로 때문에 행지(行止)가 뜻에 따라 조금도 걸릴 것이 없다는 말.
隨意興會-마음이 흥이 이는데 따른다는 뜻. 
天馬行空-천마가 창공을 나름.
山陰之雪與不雪-산음에 눈이 오거나 말거나.
戴安道-왕자유의 고사에 나오는 섬계(剡溪)에 사는 왕자유의 친구.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智永禪師-왕희지 7세손으로 승려. 중국 남조 말기(6세기 후반)의 서승(書僧). 이름은 법극(法極), 속성은 왕씨(王氏). 회계(저장성 소흥)의 사람. 왕희지의 7대손이고, 형인 효빈과 함께 출가하여 오흥(저장성)의 영흔사에 살았다. 서는 가법(家法)을 전하여 각체를 잘했으나, 초서를 특히 특기로 했다. 퇴필(退筆)을 묻혀 총(塚)을 만들고 그 명지를 썼다. 또한 영흔사 각상에서 30년간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 800본을 써서 여러 사찰에 보냈다. 수대에는 장안 서명사로 옮겨 영선사라 불리었다. 그의 서는 북송 내부에 11종이 있다.「영자팔법」을 우세남에게 전했다.
鐵門限-지영(智永禪師)이 천자문 800본을 임서해서 절 동(洞)의 절에 시입했는데 그 책을 구하는 자가 문전에 밀려와서 문이 부서져서, 철판으로 이를 보호했기 때문에 철문한(鐵門限)이라고 했다고 한다.
右軍家法-왕희지 가문의 필법. 
橫劃必瘦-횡획은 반드시 가늘다는 말.
直畫必肥-직획은 반듯이 굵다는 말.